세상을 떠난 발 킬머, AI 기술로 새로운 연기 세계를 열다
생전의 할리우드 스타 발 킬머(Val Kilmer)가 생성형 인공지능(AI) 기술을 통해 다시 스크린에 등장한다. 지난해 세상을 떠난 킬머는 실제 출연하지 못했던 영화 '무덤만큼 깊은'(As Deep as the Grave)에 AI로 구현되어 중요한 역할을 맡게 된다. 이번 작품은 뉴멕시코를 기반으로 하는 제작사 퍼스트 라인 필름에서 제작하고 있으며, 올해 개봉을 목표로 후반 작업이 진행 중이다.
킬머는 1984년 영화 '탑 시크릿'으로 데뷔한 이후 '탑건', '도어스', '히트', '배트맨 포에버' 등의 작품에서 활발히 활동하며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특히, '탑건'에서의 아이스맨 역할은 그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기며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그러나 그의 건강은 점점 악화되었고, 지난 2022년 인두암과의 오랜 투병 끝에 6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이번 영화 '무덤만큼 깊은'은 20세기 초 미국 남서부에서 고고학자 부부가 유적을 발굴하는 실화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킬머는 극중 핀탄 신부라는 가톨릭 사제이자 아메리카 원주민 영성주의자를 연기할 예정이었다. 이 캐릭터는 작품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으며, 지역 역사와 문화적 정체성이 얽혀 있는 상징적인 인물이다.
영화의 감독인 코에르테 보어히스는 킬머가 해당 역할에 가장 적합한 배우라 판단하고 수년 전 그를 캐스팅했으나 건강 문제로 실제 촬영이 불가능해졌다. 하지만 제작진은 그의 존재를 작품에 남기기 위한 방안을 모색했고, 유족의 동의를 얻어 AI 기반의 디지털 복제를 진행하게 된다. 이는 단순한 외형 재현을 넘어서, 기존 자료를 바탕으로 킬머의 표정과 분위기까지 구현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최근 연예 매체에서 공개된 스틸컷에는 사제복을 입은 킬머가 깊은 표정으로 정면을 바라보는 모습이 담겼다. 자연스러운 얼굴 표현과 세부 디테일로 인해 실제 촬영된 장면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특히 이번 프로젝트에는 킬머의 딸 메르세데스 킬머도 참여해 의미를 더하고 있다. 그녀는 "아버지는 새로운 기술이 스토리텔링의 가능성을 확장한다고 믿으셨다"며 "이번 영화는 아버지의 예술적 정신을 지속적으로 이어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언급했다.
발 킬머는 이미 AI 기술을 활용한 사례가 있다. 인두암 치료 과정에서 목소리를 잃은 그는 2022년 영화 '탑건: 매버릭'에 출연하며 AI로 복원된 음성을 사용하여 연기를 선보였다. 그는 "소통은 인간 존재의 핵심이며, 다시 자신의 목소리로 이야기할 수 있다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라고 말한 바 있다.
이번 '무덤만큼 깊은'의 제작은 향후 배우 사후 AI 기술 활용에 대한 윤리적 논의를 불러일으킬 것으로 예상된다. 고인의 초상과 연기를 기술로 재현하는 것이 예술의 확장인지, 아니면 새로운 경계 설정이 필요한 것인지에 대한 논의가 더욱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 발 킬머의 연기 복귀는 그가 남긴 예술적 유산과 새로운 기술의 결합을 통해 영화 산업에서의 AI 활용 방법에 대한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