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코인’ 정리 나선 거래소들, 금융당국 군기잡기 통했나
국내 암호화폐(가상화폐) 거래소가 당국 신고 마감을 100여일 앞두고 ‘잡코인’ 정리에 시동을 걸었다. ‘김치 코인’이라 불리는 국내 소규모 암호화폐나 공시 부실 종목, 거래소 유관 종목 등을 무더기로 투자유의(상장폐지 전 단계) 리스트에 올린 것이다. 당국이 향후 현장점검을 통한 ‘핀셋 규제’까지 예고하고 있어 ‘코인 구조조정’은 더 강화될 전망이다.
지난 11일 국내 최대 암호화폐 거래소 업비트는 25개 종목을 유의 대상으로 지정하고, 5개 종목은 원화 거래를 종료하겠다고 홈페이지에 공지했다. 오는 18일까지 업비트 내부 상장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면 이 종목들은 상장폐지 절차를 밟게 된다.
특히 업비트 등 국내 일부 거래소에서만 거래되는 김치 코인은 타 거래소에서는 매매가 불가능해 상장폐지는 곧 ‘사형선고’나 다름없다. 유의 대상으로 지정된 종목들은 이날 대부분 하루만에 시세가 반 토막 났고 13일까지 70%이상 폭락했다.
업비트가 단행한 이번 유의 종목 지정은 거래소 설립 후 사상 최대 규모다. 금융당국이 오는 9월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 시행을 앞두고 두 차례 거래소 관계자들을 불러모았는데, 이때 투기성이 높은 종목이나 자전거래 등 수상한 거래 의심 종목 등의 정리를 요구한 것으로 관측된다. 이에 거래소가 요구 사항을 맞추기 위해 기준 미달 종목에 대한 대규모 ‘구조조정’에 나선 게 아니냐는 것이다.
앞서 정부는 지난달 28일 ‘가상자산 거래 관리방안’을 통해 거래소가 자체 발행한 암호화폐의 매매, 교환을 중개하거나 알선하는 행위를 금지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번에 유의 종목으로 지정된 마로와 페이코인이 이 기준에 어긋난다. 마로는 두나무 자회사 두나무앤파트너스가 투자한 종목이다.
페이코인 발행사 다날도 자회사 다날엔터테인먼트 명의로 두나무의 주요 주주인 케이큐브1호 벤처투자조합의 지분을 갖고 있다.
업비트가 ‘코인 솎아내기’ 첫발을 떼며 4대 거래소로 묶이는 빗썸, 코인원, 코빗도 비슷한 조치를 취할 것으로 전망된다. 현재 빗썸과 코인원에서는 각각 12종, 1종이 유의 종목으로 지정돼있다. 특히 금융당국은 향후 거래소들에 대한 ‘현장 컨설팅’을 통해 사실상의 검증에 나서겠다는 입장이어서 거래 제한 조치가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일관성없는 투자유의 종목 지정이나 상장폐지 기준은 문제다. 가령 빗썸에서 유의 종목으로 지정된 비트코인캐시에이비씨와 소다코인은 각각 업비트와 코인원에서 정상적으로 거래되고 있다.
반면 업비트에서 유의 대상에 오른 퀴즈톡과 람다는 빗썸에서 거래할 수 있다. 통일된 기준 없이 ‘마구잡이 상장폐지’가 진행될 경우 그나마 안전하다고 믿었던 4대 거래소에 투자한 이들마저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이다.
업비트가 관련 공지를 금요일 오후 5시30분 퇴근길에 기습적으로 올리며 개인 투자자들은 주말 내내 혼란에 휩싸였다.
직장인 커뮤니티 블라인드에서는 “수천만원 빚을 내서 투자한 터라 더이상 버틸 수 없을 것 같다” “3년 전에도 크게 잃었는데 이번에도 똑같이 잃었다” 등 손실을 본 투자자의 ‘곡소리’가 속출했다.
“애초에 사업 계획이 부실한 종목을 상장시킨 책임도 있지 않느냐”라거나 “업비트에서 투자 손실을 보상해야 한다”는 식의 거래소를 향한 원망의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